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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미공. 혹시 주말에 시간 되시오?


 시간? 시간이야 없어도, 칸자키가 보자면 만들어야지. 수화기 너머로 왠지 망설이는 듯한 말투의 소마가 조심스레 케이토에게 주말에 시간이 어떻냐고 묻자, 케이토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된다."라고 대답했다. 


 안그래도 칸자키와 키류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 3개월 전이었던가. 나도 대학에 오고, 칸자키도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 아무래도 몸이 멀어지다보니까 한 데서 만나는 게 쉽지가 않게 되어버렸지. 케이토는 홍월 멤버들과 매일같이 모여 지겨울 정도로 얼굴을 보곤 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작게 입맛을 다셨다.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조만간 소마와 키류에게 모이자고 할 생각이었던 케이토는, 소마가 말을 꺼낸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겨 만나자는 게 아닐까 신경이 쓰여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냐?"라고 걱정스레 물었다. 이제 소마도 어엿한 어른이라지만 여전히 케이토는 소마가 마냥 챙겨줘야만 하는 어린애 같았다. 이러니까 홍월이 그 시절에 그렇게 가족 소리를 들어댔던건가. 케이토는 작게 실소하면서도, 혹시라도 정말 소마에게 안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걱정이 되어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곤 침착히 소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그것이, 소인, 최근에 동거를 시작해서..


 하스미공과 키류공을 집들이에 초대하려고... 라는 뒷말은 이미 케이토의 귀에 들리지 않게 된 지 오래. 동거라는 한단어가 케이토의 머리 속에서 댕댕 시끄럽게 반복되었다. 뭐 동거? 동거라면...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 맞나? 애인이랑...같이 사는 그런거? 급작스러운 소마의 고백에 케이토는 혹시 오늘이 만우절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전화기 옆에 놓인 탁상용 달력을 급히 뒤져보니 역시 4월 1일은 지난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진짠가. 하긴 우리 칸자키가 괜한 장난을 치는 애도 아니지. 근데, 칸자키에게 언제 애인이 생긴거지. 그 진중한 칸자키가 동거까지 결심할 정도면 꽤 오래 사겼다는 걸텐데 어째서 난 전혀 눈치채지 못한거지. 아니, 그보다 칸자키한테 나한테도 안 털어놓던 비밀이 있었다는 게 조금 충격인데. 케이토가 벙쪄서 수화기만 들고 말없이 눈만 꿈뻑이고 있자, '하스미공...?'하고 조심스레 저를 부르는 소마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아.... 칸자키 미안하다. 좀 당황스러워서.. 어째서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지?"

-그...그것이,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 계속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됐소. 용서해주시오 하스미공.


 부모에게 잘못한 것을 고하는 아이마냥 소마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자, 케이토는 나즈막히 한숨을 쉬었다. 그냥 어째서 말하지 않았는 지 물어본 것 뿐인데, 다그치는 것 같이 느껴졌나. 케이토는 목을 가다듬곤 편안한 톤으로, 소마를 다독이듯 말을 건넸다.


"나에게 용서를 빌 일이 아니야. 그냥 네가 우리한테까지 숨기고 있었다 생각하니 조금 섭섭했을 뿐이야. 그래. 키류한테도 연락해서 주말에 찾아가도록 하지. "






*****





 "뭔가 시어머니같은 꼴이군. 하스미나리."

 "조용히 해라. 키류."


 쿠로는 양 손 가득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곤 잔뜩 긴장한 채로 현관문 앞에 선 케이토를 보며 '시어머니냐'라고 생각한 채 어깨를 으쓱였다. 쿠로도 하스미로부터 소마가 애인과 동거를 시작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꽤나 충격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느정도 적응이 된 상태인데, 케이토는 그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꼭 자기 아들 기 죽이지 않으려고 상견례에 잔뜩 꾸미고 가는 부모마냥, 케이토는 고기세트며 화과자세트며 온갖 비싸보이는 것을 양 손 가득 들고 있었다. 


 "그..그럼 초인종 누르겠다, 키류."


 완전 긴장했나보네. 키류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큰 결심을 한 듯 침을 꼴깍 삼킨 케이토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초인종의 버튼을 살짝 눌렀다. 띵동-. 흔히 들어봤던 가정집의 초인종소리가 현관앞을 울리자, 케이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얼마안가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네 간답니다ㅡ."라는 상대의 목소리가 여자목소리 치곤 왠지 굵어보였지만 정신을 추스를 겨를이 없던 케이토는 딱히 그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다만 키류만이 '어 이 목소리...'하곤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때 쯤엔 현관문이 활짝 열리고 익숙한 하늘색 꽁지머리가 그 안에서 뾱 튀어나왔다. 


 "어서오세요-. 케이토, 그리고 쿠로-."


 어? 신카이...? 졸업 이후, 한번도 엮일 일 없던 의외의 인물의 등장에 케이토가 '니가 왜 여기서 나오냐?'라는 탐탁치않은 눈초리로 카나타를 쏘아보았다. 키류는 무언가 눈치챈 듯 잠시 입을 다물곤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카나타가 씨익 웃으며 아직도 긴가민가하는 키류와 감도 못잡은 케이토를 향해 마지막으로 확인사살을 날려주었다.


 "어서오세요ㅡ. 소마군과 저.의. 행복한 신.혼.집에."


 일부러 신혼집이라는 단어를 강조해 말한 카나타는 케이토에게 보란듯이 씨익 웃어주었다. 케이토는 어....? 하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바보같은 소리를 입밖으로 내다가,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된 것인지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들과 카나타를 어이없다는 듯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능구렁이같은 놈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칸자키를 홀라당 꾀어내서... 동거를 한다는 말이지...? 


 "이 도둑놈이!"

 "나리!"



 




****




"아야... 소마군 아파요."

"미안하오 신카이공.. 많이 아프오?"


 소마가 호호- 입김으로 카나타의 이마를 불어가며 데일밴드를 붙여주자, 카나타는 케이토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씨익- 웃으며 케이토를 향해 당당히 승리자의 웃음을 지어주었다. 순간의 흥분으로 화과자상자로 카나타의 머리를 내리치고야 만 케이토는, 저를 향해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보이는 카나타를 보며 역시 한 대 더 쳤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 자식 지금 내 앞에서 보란듯이 우리 칸자키한테 아프다고 칭얼대면서, 은근슬쩍 우리 칸자키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거지? 케이토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랜만에 스트레스로 뒷골이 당겨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하스미공과 키류공이 제대로 집에 찾아와주셔서 다행이오. 안그래도 거의 요리도 끝나가고 있던 참이라오. 거실에 앉아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내 금방 준비하고 부르겠소."

 

 카나타가 도와주겠다며 일어서려하자, 소마는 다친 사람에게 일을 시킬 순 없다며 카나타를 저지하곤 저 혼자 부엌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덕분에 덩그러니 키류와 케이토 그리고 카나타가 거실에 남겨지게 되자 스산한 침묵이 그 셋을 휘감았다. 쿠로가 '또 뭔 일 나는 거 아닌가..'하고 불안한듯 카나타와 케이토를 번갈아 살피고있자, 아니나 다를까 쿠로도 말릴 세 없이 재빠른 동작으로 케이토가 카나타의 멱살을 잡아쥐었다.


 "이자식... 우리 칸자키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눈빛은 금방이라도 카나타를 베어버릴 듯 살기등등하면서도, 케이토의 목소리는 혹시라도 부엌에 있는 소마에게 들릴세라 무척이나 작았다. 예나 지금이나 정말이지 소마군을 엄청 감싸고 도네요, 케이토군은. 카나타는 제 멱살을 쥔 케이토에게 환한 미소로 답했다. 


 "무슨짓이라니요. 그냥 평범하게 교제하고 있답니다?"

 "너 이자식 대체 언제부터 우리 칸자키한테 손을...!"


 케이토의 목소리가 서서히 높아지려 할 때 쯤, 마침 타이밍 좋게 소마가 "하스미공! 키류공! 식사하러 오시오!" 하곤 거실로 튀어나왔다. 그 덕분에 황급히 카나타의 멱살을 쥐었던 손을 놓은 케이토는 언제 역정을 냈냐는 듯 인자하게 웃으며 "하하. 알겠다 칸자키."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





 "하스미공 많이 드시오! 아 참. 이건 신카이공이 얼마전에 잡아온 비싼 생선인데 특별히 이 날 요리하려고 아껴두었소.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소."


 하스미와 키류쪽으로 노릇하게 잘 구워진 생선구이가 담긴 접시를 스윽 밀어주며 소마는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케이토가 생선의 살점을 발려 한 입 먹어보자 소마는 눈을 반짝이며 "어떻소?"하곤 케이토의 감상을 기다렸다. 케이토가 맛있다며 칭찬하자 소마는 그제서야 방긋 웃으며 "신카이공이 잡아온 생선은 언제나 일등품이니까 필히 하스미공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소!"하곤 카나타를 은근슬쩍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놈의 신카이공. 언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이라고 치켜세웠으면서 이제는 신카이공으로 바뀐거냐. 케이토는 내심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깨작거렸다.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했으면서'라고 서운해하는, 딸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케이토는 울적 해졌다. 


 "소마군이, 집들이에 꼭 케이토와 쿠로를 초대하고 싶다고 몇번이나 얘기해왔었답니다. 케이토와 키류는 친부모와도 같이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꼭 대접하고 싶었다고요."


 생선에 간장을 붓던 카나타나, 흘러가듯 평온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별 감정없이 하는 말 같아 보였으나, 사실은 그 말이 묘하게 케이토를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빠른 케이토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저 녀석한테까지 위로받는 날이 오다니. 나도 꽤나 한심한 사람이 되었나보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케이토의 눈시울은 조금씩 붉어져갔다.


 "저도, 언젠가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소마가 이렇게 밝은 미소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확실히 두사람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니까요."

"신카이.."

"앞으론 제가, 두 사람이 만들어놓은 소마군의 밝은 미소를 지켜주고 싶어요. 제가 감히 그래도 괜찮을까요?'


 카나타의 맑은 눈동자가 케이토와 쿠로를 향했다. 카나타와 눈이 마주친 케이토는 '아 이 녀석 진심이구나'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어서, '분하지만 이 녀석이라면 칸자키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다.'라고 납득해버리고 말았다. 이미 루돌프 사슴코마냥 코끝이 잔뜩 붉어진 케이토는 "칸자키를 울리는 날은 네 놈의 제삿날이 될 거라는 것을 명심해라."라고 퉁명스레 카나타에게 화답했다. 그 말에 담긴 저의가 허락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카나타가 "그래도 밤에는 울릴 지도 몰라요-." 하곤 키득거렸다. 





****




 "그래도 칸자키가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쿠로는 지하철 역에 가기 위해 케이토와 함께 밤거리를 걸으며, 안심한 듯 말했다. 케이토는 여전히 그런 놈한테 우리 칸자키를 맡겨야 한다니, 신용이 안간다고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집을 나서기 전에 카나타가 선물이라며 케이토에게만 들려 준 쇼핑백을 꽤나 소중히 들고있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쿠로가 궁금해져 쇼핑백을 흘깃 쳐다보니 케이토가 안에 든 게 궁금하냐며 쿠로에게 물었다. 


 "아마 녀석이니까.. 생선같은 게 아닐까? 근데 아까부터 달그닥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나도 뭔지 궁금해지네."


 케이토가 잠시 멈춰서서 쇼핑백 안에 든 상자를 꺼내, 고급종이로 싸여있는 선물의 포장을 조심스레 풀었다. 응..? 고급... 콩 세트....? 쿠로와 케이토는 '고급 콩세트'라고 써져있는 상자를 들고선 잠시 굳어버렸다. 콩은 케이토가 싫어하는 음식이 아니던가. 왜 하필 콩을...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모르고 실수로 선물한건가 싶어 케이토는 실소했다. 하긴 내가 콩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일부러 선물했을리는 없겠지. 그냥 우연일거다, 라고 생각하던 케이토는 상자 위에 테이프로 붙여져있는 작은 쪽찌를 하나 발견했다.


 '메롱'

 "신카이! 네 이놈!"


 이 자식 절대로 알고 그런거다! 절대로 알고 그런거야! 아까 그 말 다 취소다! 나는 이 동거 절대 반댈세! 길 한가운데서 케이토가 이성을 잃고 포효했지만, 이미 하늘에 뜬 달은 노랗게 무르익은 지 오래였다.








* 두번째 써보는 카나소마입니다 ^ㅇ^,,,, 사실 카나소마가 꽁냥되는 건 안나오고 케이토가 츳코미거는 것만 나오는 것 같지만요,,,(머리박) 어제 이벤트 스토리를 다 읽었는데 역시 카나소마는 결혼한 것 같습니다. 이상입니다.. 쓰고 다시 안읽어봐서,,, 구린표현 대잔치일거같은데 나중에 수정하겠습니다,, 그럼,,,저는 카나소마네 옷장으로 출근해야해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