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치아] 소문의 왕자님 02
내가 왜 여기 앉아있지.
"맛있게 드세요."라고 생긋 웃은 채 미도리와 제 앞에 먹음직스러운 과일파르페 두 개를 놓아 주는 카페 점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치아키는 수행하는 부처와 같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물론 갑자기 파르페가 미친 듯이 땡겨서 이 카페에 온 건 아니다. 그러니까 왜 이런 상황까지 왔냐하면, 치아키는 저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며 학년은 저보다 두 학년 아래인 '학교의 왕자님' 타카미네 미도리가 남자끼리 이러쿵 저러쿵 연애하는 종류의 만화책을 좋아한다는 일종의 비밀(?)을 알아버리게 된 것이 계기였다.
치아키에게 비밀을 들키자마자 바로 무섭게 돌변한 미도리의 표정에 바짝 쫀 치아키는 '자신도 이런 것을 좋아한다'며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쳐버렸고, 그 말에 미도리는 치아키를 자신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는지 흉흉해졌던 표정을 펴곤 길거리에서 교리를 전도하는 종교인마냥 환하게 웃으며 '깊은 대화를 나눠보자'며 서점 근처에 있는 이 카페에 치아키를 막무가내로 끌고 왔던 것이다.
치아키는 길가다 사이비에게 걸린 선량한 시민이 된 기분이었다. '깊은 대화를 나눠보자'며 끌고 온 꼴이 딱 '도를 아십니까'의 상황과 비슷한데도, 제가 뱉어버린 말이 있는지라 치아키는 이 상황을 섣불리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치아키는 '도를 아십니까?'라고 접근해 온 사람에게 '네! 저도 도 좋아해요!'라고 스스로 당당하게 말한 꼴이었으니 말이다. 치아키는 낮게 한숨을 쉬며 손을 들어 제 입을 툭툭 쳤다. 요 입이 문제지. 요 입이 문제야.
그래도 파르페는 미도리가 계산했던지라, 치아키는 '그래. 나는 지금 공짜파르페를 얻어 먹고 있는거야'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스푼을 들었다. 하지만 파르페의 맨 위에 동그랗게 얹어져 있던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미처 한 입 퍼먹어 보기도 전에, 불쑥- 미도리의 듣기 좋은 미성이 치아키를 향해 말을 걸었다. 물론 뒤에 쏟아지는 말의 내용은, 그 미성과는 언발란스하게 안 맞았지만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물은 어떤거예요? 혹시 따로 좋아하는 작가님은 있어요? 좋아하는 작품은요? 혹시 그것도 아니면 2차창작을 더 좋아하시는 쪽인가? 저는 둘 다 좋아하거든요! 좋아하는 공수타입은요?"
제발 질문은 하나씩 해줘!
세상에서 제일 말빠른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생각인 건지 쉴새없이 줄줄이 소세지마냥 질문을 쏟아내는 미도리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치아키는 뇌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대체 '물'은 무엇이며, '2차창작'이란 것은 무엇이며, 공수타입은 또 무어란 말인가.요새 젊은이들의 신조어를 이해하지 못해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게 된 중장년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치아키는 뭔지 모를 일종의 패배의식마저 느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서 아, 아직은 그런 것들까진 잘 모르겠어!"
'방금 전에 알았다! 하하! 그리고 사실은 관심도 없어!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미 자신과 치아키를 동류라고 생각하곤 기쁜 듯이 입을 나불대고 있는 상대에게 그렇게 모질게 말할 잔인한 성격은 아니었던 지라, 치아키는 적당히 센스를 발휘해 미도리의 말을 받아쳐주었다.
아이스크림 녹겠다. 치아키는 점차 흐물흐물해지는 아이스크림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이젠 정말 먹어야겠다면서 아까 놓았던 스푼을 다시 손에 들었다. 그러나 미도리는 파르페는 여전히 먹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녹고있는 파르페는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제 가방을 뒤적이다가 만화책 하나를 꺼내 치아키 쪽으로 스윽 밀었다.
"…아, 그러시구나. 그, 그럼 이거, 제가 엄청 좋아하는 작품인데 괜찮으시다면 빌려드릴까요?"
아무리 봐도 절대 평범한 친구사이는 아닌 것 처럼 보이는 두 남자 캐릭터가 치아키를 향해 웃고 있는 표지였다. 치아키는 '이 책도 그런 류겠구나'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만화책이라곤 아주 가끔가다 만화방에 가서 히어로물을 보는 게 전부였던 치아키는 갑자기 들이닥친 신문물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그렇다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 보고 있는 후배의 기대를 배반할 수도 없던지라 미도리가 추천한 만화책을 집어 가방에 넣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구나! 하하. 잘 보고 돌려줄게."
"그, 근데요… 저, 저기 버, 번호 좀…"
"번호?"
우물쭈물 저에게 핸드폰을 건네는 미도리를 보며 치아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아키가 되묻자 당황한 미도리는 익힌 당근마냥 얼굴이 붉어져선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그, 그러니까! 만화책을 돌려 받으려면… 마, 만나야 하니까…요… 혹시 싫으신거면…"
"아! 그렇구나. 미안! 그걸 생각 못했네. 여기다가 번호 찍으면 되는거지?"
치아키는 미도리의 핸드폰에게 핸드폰을 건네 받아 키패드에 자신의 번호를 찍어 다시 미도리에게 돌려주었다. 어쩐지 조금 감동한 것 같은 얼굴로 잠시동안 액정을 빤히 쳐다보던 미도리는 "그, 그럼 나중에 후, 후기 들려주세요…!"라고 말을 덧붙여 치아키를 다시 괴롭게 만들었다.
얘가 이런 캐릭터였던가. 역시 사람은 외모만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며, 치아키는 작게 한숨 쉬었다.
"헉! 번호까지 따내다니! 미도리군 완전 남자답구료!"
"이제 사귀는 건 시간문제지 않겠슴까!"
시내 약간 구석진 곳에 위치한 한 카페. 귀여움이 테마인 것인지 이곳저곳 핑크계열의 아기자기한 물품들로 잔뜩 꾸며진 이 카페에서 아까부터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는 남학생 셋은, 아무래도 같은 학교는 아닌지 각자 다 다른 디자인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셋 중 가장 키 큰 남학생의 이름은 타카미네 미도리. 이 일대의 Y고등학교에서 왕자님으로 소문난, 그 소년과 동일인물이다. 그리고 나머지 둘은 미도리와 중학교 시절 동창으로 각각 센고쿠 시노부, 나구모 테토라라고 하는 인물. 이 셋은 중학교때 서로 마음, 아니 BL정신이 맞아 친해지게 되었고, 비록 고등학교는 각각 갈렸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연락하며 무슨 일이 생기면 꼬박꼬박 만나는 것으로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사교성이 없어 주변에 친구가 적은 미도리에겐 이 둘은 거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 아냐! 그, 그냥 평범하게 번호교환 했을 뿐인걸. 너, 너무 비행기 태우지마…"
어제 치아키와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테토라와 시노부에게 보고한 미도리는, 둘의 격렬한 반응에 아까부터 몸을 베베꼬며 부끄러워하고 있었지만 싫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무척이나 행복해서, 미도리는 어제부터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치아키의 번호를 몇번이나 들여다 봤는지 모른다.
미도리가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수줍어 하자 시노부와 테토라는 옆에서 더 바람을 잡아댔다.
"원래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소! 번호까지 땄으면 이미 반은 훨씬 넘은 것이구려!"
"…정말?"
"물론이오! 이 센고쿠 시노부! 닌자의 명예를 걸고 말하는 바오!"
안타깝지만 겨우 이딴 걸 말하는 데 닌자의 명예씩이나 거는 시노부의 행동에 태클을 걸 상식인은 이자리에 없었다. 테토라마저도 번호를 땄으면 사귀는 건 시간문제라고 옆에서 부채질을 해오니, 미도리의 두 뺨은 당장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붉게 달아 올랐다.
"근데 아직도 그 분은 미도리군을 기억하지 못함까?"
불현듯 생각난 테토라가 미도리에게 물었다.
@재밌고 사랑스러운 글을 쓰고 싶은데,,, ;__;) 제 맘처럼 쉽지가 않네요.
유성대 1학년즈를 쓸때는 매번 걸즈토크 장면을 써서 그런지 늘 즐겁습니다 ㅋㅋㅋ,,옆집사쿠마님을 빨리 쓰고 이것도 2월에 열리는 행사에 들고가고싶은데 ㅠㅠㅠ 개강 ㅠㅠㅠㅠ 흑,,,제가 할 수 잇을가요 ㅠㅠㅠ
@언제나 그렇듯 오타같은 건 ,,, 수정을 안합니다,,,회지로 낼때 고치겟습니다,,
@약간(??)의 캐붕이 있긴 하지만,,, 스토리 진행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변명해봅니다 흑흑. 미도리가 여기선 되게 쑥쓰쑥쓰 순둥순둥한 애로 나오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