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치아] 소문의 왕자님 01
*BGM과 함께 읽어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어딜가나 월등하게 잘난 놈은 눈에 띄길 마련이다. 공부를 잘하건, 운동을 잘하건, 성격이 좋건 그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그 '잘남'이 겉으로 나타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그 가치는 곱절이 되는데, 그래서인지 치아키는 종종 점심시간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농구코트 쪽 계단에 앉아 깨작깨작 도시락을 먹는 남학생에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길이 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짙게 그늘 진 울타리 아래에 앉아 있는데도 그 소년의 얼굴에서만큼은 늘 빛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좀 더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무진장 잘생긴 소년이었다. 종종 치아키가 그 얼굴을 흘깃거리다가 같은 팀에게 농구공을 패스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려 팀원에게 군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빨간색 넥타이. 일학년일텐데 키는 대충 어림잡아도 저보다 더 커보였다. 농구부에 들어오라고 권유해볼까-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가끔가다 농구코트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는 별로 농구에 대한 흥미가 없어보여 치아키는 관두었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다가 농구를 하라고 은연중에 압박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년의 이름은 궁금해서, 어느날 창가자리에 앉아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치아키는 다음이 체육시간인지 운동장에 나와 구호에 맞춰 몸을 풀고있는 일학년들 틈바구니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소년을 발견하곤 곁에 있던 반 친구에게 "쟤 알아?"하고 떠보듯 물었다. 동급생은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는 "타카미네 미도리잖아."하고 술술 그 이름을 불었다. 별로 물어보지도 않았던 부가적인 정보까지 재잘재잘 늘어 놓으며 말이다.
"우리 학교 왕자님이잖아. 개학하고 쟤한테 고백한 여자애들이 족히 백은 넘을걸?"
"왕자님?"
"잘은 몰라도 엄청 유명한 대기업의 외동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얼굴이 반반해서 그런지 인기도 많아서 일주일도 못가서 여자를 갈아 치운다더라. 이미 중학교때 사고쳤다는 소문도 있고."
"그럴 애는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보통 대기업의 외동아들이 점심시간때 몰래 숨어 도시락 같은 걸 먹나? 치아키가 이상하다는 듯 작게 반박했지만 동급생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어?"하고 어깨를 으쓱이다가 곧 "음악실이나 가자"며 치아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 다음이 음악시간이었구나. 칠판 옆에 걸린 시간표를 바라보며 급히 음악 교과서를 챙긴 치아키는, 창밖 너머로 소년을 한 번 더 흘깃거리다가 빨리 오라고 저를 재촉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잰걸음으로 교실 밖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소년을 봤을 때는 어째선지 소년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다시 확인해 보기에는 남은 쉬는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기본문제가 많은 문제집으로 살까, 응용문제가 많은 문제집으로 살까.
오픈한 지 별로 안 된 오전 시간이라, 서점 안은 한산하기만 했다. 올해 대입을 앞둔 삼학년인 치아키는 서점에서 가장 목 좋은 곳에 위치한 문제집 코너에서 벌써 십여분째 수학문제집 두 권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도통 결론이 나질 안났다. 두 권을 다 사자니 다 풀진 않을 것 같아서 돈이 조금 아깝고. 직원한테 추천 받을까-싶어서 직원을 찾기 위해 서점을 훑던 치아키는, 서점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만화책 코너에서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하곤 눈을 꿈뻑였다.
보드라운 흰 크림을 조금 섞은 것 같은 부드러운 연갈색의 머리칼,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중학생이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잘 완성되어 있는 균형잡힌 몸. 치아키는 저런 사람을 딱 하나 알고 있었다. 저보다 두 학년 아래의 타카미네 미도리. 소문에 의하면 대기업 외동이기도 하고, 여자를 매주 갈아치우는 방탕아이기도 하고, 무슨 조직과 연관이 되어있기도 하다는 그 소년 말이다.
그래도 뒷모습만으로는 확실히 그 아이라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치아키는 남자의 옆모습을 확인해 볼 겸 들고 있던 문제집을 내려놓곤 느릿하게 만화책 코너로 향했다. 도둑질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남자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엔 조심스러움이 묻어나왔다.
혹시 누가 훔쳐 보기라도 할까 경계하는 것처럼 만화책을 몸 쪽으로 바짝 붙이고 서 있는 남자는, 마스크와 캡모자로 나름 얼굴을 가리려고 한 것 같았지만, 그런 것들로는 저 우월한 미모를 다 가려내기에 한참을 역부족이었다. 나비가 날개를 접고 앉은 것 같이 길게 뻗은 속눈썹을 보며, 치아키는 단박에 그가 미도리임을 알아차렸다.
무슨 책을 저리 열심히 읽고 있을까.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근처까지 왔는데도 치아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열심히 만화책을 정독 중인 미도리를 보며 치아키는 새삼 그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얘는 만화책을 읽고 있어도 무슨 고전소설을 읽고 있는 귀족같네, 라고 속으로 은근히 감탄하며 치아키는 특유의 사교성을 발동해 미도리에게 말을 걸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읽어?"
서점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클래식 음악이 전부였던 이 조용한 공간에 갑자기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자 미도리는 사냥꾼에게 발각된 토끼마냥 화들짝 몸을 떨더니, 들고 있던 만화책을 바닥으로 떨궜다. 툭, 책의 모서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깊은 어색함이 두 사람을 감쌌다. 말을 걸지 말 걸 그랬나, 하고 드물게 후회하며 치아키는 허리를 숙여 미도리가 방금 떨군 책을 주웠다.
"하, 하지마세요!"
"?"
깜짝이야.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미도리의 행동에 그나마 얼마없던 손님들의 시선이 전부 치아키와 미도리에게로 쏠렸다. 순식간에 지하철 치한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치아키는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예요'라고 변명하듯 손을 흔들었다.
"이, 이리 주세요!"
곰이 강 상류에서 팔을 휘둘러 연어를 낚아채듯, 미도리는 팔을 뻗어 치아키에게 들린 만화책을 빼앗으려 했지만, 치아키가 반사적으로 만화책을 제 등 뒤로 숨기는 바람에 그 노력은 수포가 되고 말았다. 덕분에 붉으락푸르락, 미도리의 얼굴이 초단위로 변화를 반복했다.
의도치않게 어린아이에게서 사탕을 뺏은 것 같은 죄책감에 치아키가 "미안.."하고 사과하며 등 뒤로 숨겼던 만화책을 재빨리 다시 미도리에게 건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치아키는 만화책을 건네주면서 그 표지에 자연스레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본 치아키는 순간 흠칫 해버리고 말았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두 캐릭터는 어째선지 금방이라도 키스할 것 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애뜻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치아키가 흠칫했던 부분은 두 캐릭터 모두 남자라는 점에 있었다. 물론 동성끼리의 연애에 편견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학교의 왕자님인 미도리가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던게 이런 류의 만화책이라는 게 놀라웠을 뿐이다.
하지만 치아키의 그런 반응을 눈에 담은 미도리는 치아키가 본인을 혐오하고 있다고 오해한 것인지, 온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간 뱀파이어마냥 창백해졌다. 그리고 곧 뱀파이어도 무서워서 도망갈 것 같은 음산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봤죠..?"
순간 치아키는 어릴 적 친구네 집에 놀러가 늦은 저녁에 다같이 모여봤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얼굴도 이쁘고 성격도 좋았던 주인공의 친구가 알고보니 사람을 여럿죽인 연쇄살인마였고, 그것을 주인공한테 들키자 '봤으니 죽어줘야겠어.'라며 칼을 들고 쫓아오던 장면이었다.
치아키의 등 뒤로 줄줄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치아키는 어찌할까 싶어 눈을 굴렸다. 봤다고 하면 또 무섭게 쳐다볼 것 같고, 보지 않았다고하면 거짓말 하지 말라면서 혼날 것 같다. 그래서 급기야 치아키는 진퇴양난인 상황인 이 상황에서, 당시로서는 꽤 현명한 답변이라고 생각하며, 급기야는 해서는 안됐을 말을 뱉어버린 것이다.
"거, 걱정마라! 나, 나도 좋아한다 이런거!"
#아,,, 흠,,, 엄,,, 원래는 달달한 걸 쓰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또 개그물로 갔습니다,,
매일 재미없는 걸 개그물이라고 우겨서 죄송합니다,,, 2월에 낼 믿챠 신간으로,,,생각해 둔,,,,글이긴 한데,,,,, 재미가,,,없는 거 같고,,,(소심),,, 재밋엇다고 말씀해주시면,,,그래도 자신감이 붙을 수도 잇을 거 같습니다 ,,,흑흑(구걸) 그리고 bgm은 적당한게 생각안나서 요새 꽂힌 노래로 넣엇습니다 흐흐
#글 속 배경은 아이돌육성학교가 아니라,,, 그냥 일반계고등학교입니다~!